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레샴의 법칙 (문단 편집) === [[당백전]] === 반면 [[당백전]]이라는 악화가 나온 [[흥선대원군]] 시기에는 양화인 상평통보를 죄다 숨겨버리고 당백전만 유통되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당시 당백전은 실제 가치가 액면가의 6/100의 가치 밖에 없는[* 당백전의 액면가는 상평통보의 100배였지만, 금속가치는 5~6배에 불과했다.] 악화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수된 것이 청나라 화폐의 위조품들인데 이걸 청전이라고 했다. 가치는 상평통보의 1/3. 하지만 당백전에 비하면 양화이다. 그런데 당백전이 폐지되고 오히려 청전 유통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부터는 청전이 악화가 되었고, 상평통보는 여전히 창고속에서 나오지 않았다라는 이야기. 결국 조선정부는 대원군이 물러난 다음에 청전마저 폐지해야 했다. 청전과 당백전의 유통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화폐에 대한 불신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 실물화폐와 전자화폐는 법정 교환비가 동일한 완전 대체재이므로 양화와 악화를 나눌 수 없다. 제조단가는 물물교환과는 아무 상관없는 팩터다. 다만 위 단락에서 언급된 인플레이션의 근본적인 이유는 당백전을 '''너무 많이''' 발행했기 때문이다. 소량만 찍어냈다면 당백전을 모을 만큼 여유있는 사람들은 최대한 상평통보를 숨겨놓고 당백전으로만 거래 했겠지만, 상평통보(양화)를 대체할 만큼 당백전(악화)이 많지가 않다면 그레샴의 법칙처럼 완전히 구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에 유통되던 상평통보의 총액은 약 1천만 냥으로 추정되는데, 이 때 풀린 당백전의 총액은 적어도 공식적으로 1천6백만 냥 정도나 되었다. 현대의 화폐에 비하면 위조하기가 쉬운 옛날 금속화폐의 특성상 금속의 가치가 액면가치랑 비슷한데, 상평 6냥짜리 동전이 100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쏟아져 나오니 기존의 상평통보는 모조리 장롱행... 그런데 총 통화량은 2천6백만 냥으로 증가했으므로 물가는 최소한 이론적으로 2.6배 뛰었을 것이기 때문에 당백전(100냥 단위)으로 거래할 만한 부자들이 아니면 죄다 물물교환으로 회귀하고 화폐경제는 파탄나고 세금도 제대로 안 걷히고... 생각해보면 상당히 특이한 상황인데, 북한처럼 새 화폐가 구 화폐를 100:1의 비율로 대체한 것도 아니라서 여러모로 곤란하다. 공식수치만 두고 보자면 기존에 1천만 냥 분량의 상평통보가 있었고 새로이 당백전 1천6백만 냥(액면가)을 발행했는데, 이 당백전들의 금속가치는 96만 냥(1600 / 100 * 6)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레샴의 법칙에 따라 1천만 냥의 양화가 모두 사라져버리고 실질가치 100여만 냥의 악화만 유통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엄밀히 따지면 이는 ~~하이퍼~~ 디플레이션 상황이었다. 현대의 신용화폐(지폐, 은행예금 등)는 내재가치가 제로에 가까우므로[* 주화야 녹일 수 있지만, 지폐를 돈 말고 어떻게 쓰겠는가? 지폐가 휴지보다 싸지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지폐의 내재가치는 0이라 봐도 무방하고, 인플레이션이고 디플레이션이고 간에 전자정보인 은행예금은 돈 말고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에, 은행예금의 내재가치는 그냥 0 그 자체.]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오겠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